고봉 선생이 우리집안의 제사 모시는 사정을 퇴계에게 질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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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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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고봉선생이 퇴계선생에게 당시의 우리집안을 설명한 글로 다시 정서하여 설명과 함께 올린다.
조선시대에 주자가례에 따라 사대부는 4대를 기제사지내고 그후엔 신주를 사당에서 옮겨 땅(묘)에 묻는다. 4대를 기제사 지내면 한세대를 20년으로 보면 100년이고 30년으로보면 120년으로 대략 100년은 넘어간다. 제사는 장손만 지내는 줄 알지만 그것이 아니고 4대를 봉사한다는 것이 장손 4대가 아니라 살아있는 후손 4대다. 그러니까 장손의 4대는 고조부까지 기제사 지내는 것이고 큰아들로만 이어져 100년쯤 가는 동안 4세손이 죽고 5세손이 나와서 5대조인 현조부는 신주를 묘에 묻는 매안을 해야 하지만 작은집의 작은집에서는 장손에게는 현조부가 아직 고조부이거나 증조부인 후손이 있다면 신주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신주를 그 살아있는 증손자나 현손자(최장)의 집으로 옮겨 기제사를 이어 나가고 모든 현손자가 죽어야 신주를 묘에 묻는 매안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고봉 할아버지가 퇴계선생에게 질문하는 이 편지글은 그러면 현손자는 죽었지만 그 부인이 살아있다면 이때 신주를 묻는 매안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대로 있어야 하나 하는 문제이다. 고봉 할아버지에겐 고조부이신 청파 할아버지의 신주에 대한 물음에 대한 것은 기은 할아버지에 대하여 아드님 정자공 기침 할아버지가 쓰신 기의헌 행장을 소개 하면서 다시 올리겠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에서 인용한다. 그냥 읽으면 무슨 말인가 모를 듯하여 갈호안에 약간의 주를 달았다.
[저의 가문은 영락하여 여러 종반들이 흩어져 살기 때문에, 온 집안의 높은 조상에 대해 오래도록 예를 거행하지 않아, 고조(청파 할아버지)의 신주가 아직도 제사를 주재하는 집에 있는데, 제사를 주재하는 이는 바로 그분의 5대손(의 할아버지인 듯)입니다, 전에 숙모(준 할아버지의 부인)가 살아 계실 때는, 그 분이 증손대(청파 할아버지의 증손자대는 책받침부수 돌림자 5형제대)가 되기 때문에, (옮겨야 하지만 준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안계시는 등 사정상)옮겨가 모실 수가 없어서 감히 체천(신주를 옮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숙모 역시 돌아가셨으니, 지금의 제도로 미루어 보건대 체천하지 않을 수 없는 형세이고, 증조(축 할아버지)도 제사를 이은 이(의 할아버지인 듯)에게는 고조가 되니, 이 분도 옮겨다가 모셔야 마땅합니다. 다만 최장(항렬상 가장 높은 분)이 되는 형(대림 할아버지)이 멀리 호남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옮겨다 모시는 예를 실행하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주재하는 이(의 할아버지인 듯)가, 어머니(대복 할아버지의 부인 전주이씨)가 아직 살아 계신다 하여, 다른 집으로 옮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비록 맏며느리가 주제하는 것에 관계되지만, 한때의 편의를 따른 것이니, 행할 수 있는 일인 듯합니다. 고조를 체천하는 의논에 대해서는 종형(4촌형으로는 이웃의 호남에 살던 참판공의 아들 3형제와 서울사는 고봉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대항 할아버지가 있지만 이분들 가운데에서 아마도 대항 할아버지인 듯) 이 [주자가례에도 고조까지 제사한다는 말이 있으니, 지금 체천하는 것은 편치 않다] 했습니다. 만약 다른 집으로 옮기고자 하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실행하기 어려운 형편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주재하는 이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다 하여 그대로 그 집의 별실에 모셔 두면, 이것은 5대를 제사하는 것이 됩니다. 제사를 주재하는 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천봉하기가 이미 어렵고 그렇다고 매안(땅에 묻음)하는 것도 편치 않으니,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제사를 주재하는 이의 나이가 많아서 종숙의 항렬에 있는 이들 가운데 도리어 젊은 사람이 많습니다. 상식적인 이치로 말하자면, 제사를 주재하는 이가 혹시 먼저 죽고 그 아들이 제사를 이을 경우, 한 집안에 6대의 제사가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예의 본뜻에나 시속의 편의에나 더욱 방해됩니다. 저희 집안이 비록 한미하다고는 하지만, 소종小宗을 받드는 이들이 무려 여나문 집이나 됩니다, 만약 4대를 봉사하는 것으로 정한다면, 마땅히 집안의 일족이 돌아가면서 받들어야지, 단지 종가에서만 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제도를 어기고서, 집안이 돌아가며 제사를 받드는 것을 한 집안의 법으로 삼고자 한다면, 또한 의례가 꺼리는 데에 걸리고 옳지 못한 죄를 범하게 되어 매우 불편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지금의 제도를 따르는 쪽으로 결정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형님(대림 할아버지)이 마침 사당을 세운다고 하시며, 편지를 보내어 몇 분의 감실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그 때문에 다시 마음이 편치 아니하여, 새로이 가례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결정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종가의 경우에는 3대로 결정하고 우리 사당의 경우에는 4대로 정한다면, 남의 일을 처리하고 나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판이하게 둘로 갈라져, 더욱 편치 않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예에도 맞고 지금의 제도도 거스르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무릇 이러한 여러 곡절에는 또한 편지로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주자가례에 따라 사대부는 4대를 기제사지내고 그후엔 신주를 사당에서 옮겨 땅(묘)에 묻는다. 4대를 기제사 지내면 한세대를 20년으로 보면 100년이고 30년으로보면 120년으로 대략 100년은 넘어간다. 제사는 장손만 지내는 줄 알지만 그것이 아니고 4대를 봉사한다는 것이 장손 4대가 아니라 살아있는 후손 4대다. 그러니까 장손의 4대는 고조부까지 기제사 지내는 것이고 큰아들로만 이어져 100년쯤 가는 동안 4세손이 죽고 5세손이 나와서 5대조인 현조부는 신주를 묘에 묻는 매안을 해야 하지만 작은집의 작은집에서는 장손에게는 현조부가 아직 고조부이거나 증조부인 후손이 있다면 신주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신주를 그 살아있는 증손자나 현손자(최장)의 집으로 옮겨 기제사를 이어 나가고 모든 현손자가 죽어야 신주를 묘에 묻는 매안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고봉 할아버지가 퇴계선생에게 질문하는 이 편지글은 그러면 현손자는 죽었지만 그 부인이 살아있다면 이때 신주를 묻는 매안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대로 있어야 하나 하는 문제이다. 고봉 할아버지에겐 고조부이신 청파 할아버지의 신주에 대한 물음에 대한 것은 기은 할아버지에 대하여 아드님 정자공 기침 할아버지가 쓰신 기의헌 행장을 소개 하면서 다시 올리겠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에서 인용한다. 그냥 읽으면 무슨 말인가 모를 듯하여 갈호안에 약간의 주를 달았다.
[저의 가문은 영락하여 여러 종반들이 흩어져 살기 때문에, 온 집안의 높은 조상에 대해 오래도록 예를 거행하지 않아, 고조(청파 할아버지)의 신주가 아직도 제사를 주재하는 집에 있는데, 제사를 주재하는 이는 바로 그분의 5대손(의 할아버지인 듯)입니다, 전에 숙모(준 할아버지의 부인)가 살아 계실 때는, 그 분이 증손대(청파 할아버지의 증손자대는 책받침부수 돌림자 5형제대)가 되기 때문에, (옮겨야 하지만 준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안계시는 등 사정상)옮겨가 모실 수가 없어서 감히 체천(신주를 옮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숙모 역시 돌아가셨으니, 지금의 제도로 미루어 보건대 체천하지 않을 수 없는 형세이고, 증조(축 할아버지)도 제사를 이은 이(의 할아버지인 듯)에게는 고조가 되니, 이 분도 옮겨다가 모셔야 마땅합니다. 다만 최장(항렬상 가장 높은 분)이 되는 형(대림 할아버지)이 멀리 호남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옮겨다 모시는 예를 실행하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주재하는 이(의 할아버지인 듯)가, 어머니(대복 할아버지의 부인 전주이씨)가 아직 살아 계신다 하여, 다른 집으로 옮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비록 맏며느리가 주제하는 것에 관계되지만, 한때의 편의를 따른 것이니, 행할 수 있는 일인 듯합니다. 고조를 체천하는 의논에 대해서는 종형(4촌형으로는 이웃의 호남에 살던 참판공의 아들 3형제와 서울사는 고봉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대항 할아버지가 있지만 이분들 가운데에서 아마도 대항 할아버지인 듯) 이 [주자가례에도 고조까지 제사한다는 말이 있으니, 지금 체천하는 것은 편치 않다] 했습니다. 만약 다른 집으로 옮기고자 하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실행하기 어려운 형편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주재하는 이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다 하여 그대로 그 집의 별실에 모셔 두면, 이것은 5대를 제사하는 것이 됩니다. 제사를 주재하는 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천봉하기가 이미 어렵고 그렇다고 매안(땅에 묻음)하는 것도 편치 않으니,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제사를 주재하는 이의 나이가 많아서 종숙의 항렬에 있는 이들 가운데 도리어 젊은 사람이 많습니다. 상식적인 이치로 말하자면, 제사를 주재하는 이가 혹시 먼저 죽고 그 아들이 제사를 이을 경우, 한 집안에 6대의 제사가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예의 본뜻에나 시속의 편의에나 더욱 방해됩니다. 저희 집안이 비록 한미하다고는 하지만, 소종小宗을 받드는 이들이 무려 여나문 집이나 됩니다, 만약 4대를 봉사하는 것으로 정한다면, 마땅히 집안의 일족이 돌아가면서 받들어야지, 단지 종가에서만 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제도를 어기고서, 집안이 돌아가며 제사를 받드는 것을 한 집안의 법으로 삼고자 한다면, 또한 의례가 꺼리는 데에 걸리고 옳지 못한 죄를 범하게 되어 매우 불편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지금의 제도를 따르는 쪽으로 결정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형님(대림 할아버지)이 마침 사당을 세운다고 하시며, 편지를 보내어 몇 분의 감실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그 때문에 다시 마음이 편치 아니하여, 새로이 가례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결정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종가의 경우에는 3대로 결정하고 우리 사당의 경우에는 4대로 정한다면, 남의 일을 처리하고 나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판이하게 둘로 갈라져, 더욱 편치 않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예에도 맞고 지금의 제도도 거스르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무릇 이러한 여러 곡절에는 또한 편지로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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