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기씨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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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좌공 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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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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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별좌공 기괄奇适 할아버지에 대하여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별좌를 지내고 남기신 시가 막내동생 기준奇遵 할아버지의 문집인 덕양집에 전한다 한다. 묘가 포천에 있다고 족보는 기록하는데 잊어버렸는지 원당 도선산에 가묘를 마련했다. 첫째 아들 기대관 할아버지도 별좌를 지내고 묘가 포천에 있다고 했다. 부인이 전주이씨로 증조부가 세종대왕의 아들 임영대군이고 할아버지가 익주군이고 아버지가 윤산군으로 왕족이다. 그래서 아들 기경중 할아버지는 음직으로 하양현감을 재냈고 이때 아들 기웅헌 할아버지가 경주에 정착한다. 별좌공의 둘째 아들 기대정 할아버지는 1573년(선조6년)에 종9품 강릉참봉康陵參奉으로 있다가 산야山野의 행실이 있는 사람이나 이미 벼슬을 제수한 자 중에 더욱 특이한 자는 차서에 구애없이 발탁하여 쓰라는 선조의 명령에 따라서 다른 6사람과 함께 6품으로 승직하고 1579년에 지평이 되었으며 1583년에 장령에 임명되었다. 태조太祖의 계비繼妃 강씨康氏가 태종太宗이 즉위한 후에 태조의 사당에 배향配享되지 못하였는데 (정동에 있던 능을 정릉으로 이장하고 능은 잊혀졌으면 능 주위의 석물을 수표교 만드는데 쓰였다)선조宣祖 때에 와서, 신덕왕후는 태조의 정비正妃이니 태묘太廟에 배향해야 한다는 논의가 몇 년 동안 제기되었으나 윤허를 받지 못화고, 제사만 지내고 있었다. 이 때 기대정 할아버지가 양사는 부묘祔廟를 청해야 하는데도 각閣만 세우고 제사 지내기만을 청한 것은 잘못이라고 하여 이를 지지하는 홍문관弘文館과 양사 모두 사직시켰고 함께 벼슬을 그만두었다. 이후에 같이 서울사는 도승지공 문중과 양자를 교환하며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이량의 숙청과 김자점을 숙청하면서 기진흥이 역모로 죽자 더 이상 도성에 살수 없어 기대관 할아버지 후손은 충북 제천으로 기대정 할아버지 후손은 평택 현덕면 권관리로 낙향한다. 백범일지 등을 보면 백범의 직계와 김자점은 14촌관계로 얻을 게 있으면 친척이고 잃을 게 있으면 남이라고 할 정도의 촌수인데도 김구의 조상도 서울에서 황해도로 낙향하여 사는 것처럼 별좌공 문중도 서울을 떠났다. 그 후에 역사책에 나오는 분들은 없다. 기대정 할아버지 후손이 낙향한 평택의 현덕면 권관리는 권세를 부렸던 이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권세 권權, 벼슬 관官자를 써서 권관리權官里로 불리었다는 전설이 있다. 경주에 정착해 살던 기웅헌 할아버지 후손 일부가 가창과 충북 금산을 거쳐 경북 영동, 상주에 기준헌 할아버지 후손이 경북 상주에 산다. 경북 예천에 광주 고봉 할아버지 후손이신 기학신 할아버지 후손이 산다고 하는데 절대 아니다. 그래서 옛날 족보를 구해서 비교해 보니 광주에 사셨던 기학신 할아버지는 아들이 기상건이고 기상건은 아들이 기항국恒國이 있었으나 일찍 죽고 딸만 한명 있다가 아들을 보기 위해 첩을 들여 아들 기순국順國을 보았지만 이마저도 자식이 없다(无后)고 한다. 그러나 1982년판을 보면 기상건 대신해 기상형을 넣고 둘을 합치면서 기상건 자리를 차지하고는 초명은 상건이라 하고 부인도 기상건의 부인은 상산김씨인데 기상형에서는 두 번째 부인으로 경주손씨를 추가 하였다. 언젠가 별좌공 문중의 제천문중분이 별좌공 문중에서 고봉선생의 문헌공문중으로 많이 옮겨갔다고 해서 설마 했었는데 이것은 사실이며 예천문중은 광주문중 소속이 아니고 인근의 상주와 같은 별좌공문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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