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국공신光國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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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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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년(중종 13) 4월 21일 조선에서는 명에 다녀온 사신의 보고를 통하여 대명회전의 조선국朝鮮國 항목에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 지금 이름 단이라고 하는 사람이 1375년(홍무 8)부터 1392년(홍무 25) 전후에 무릇 고려의 왕씨 임금 4명을 시해하였는데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음을 알았다. 중종은 곧바로 태조 이성계의 종계를 바로잡기 위하여 사신을 보냈다. 명은 회답문을 통해서 요청한 대로 종계를 개정하겠다고 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대명회전은 명 태조의 말씀이므로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명분이었다. 중종·인종·명종 3대에 걸친 60여 년간 조선과 명 사이에는 종계변무가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태조 이성계의 종계변무는 선조가 왕위에 오른 후 최대의 외교 현안으로 대두하였다.
선조는 1573년(선조 6)에 종계변무를 위한 주청사奏請使를 보냈다. 당시 주청사는 이후백과 윤근수였으며 서장관은 윤탁연이었다. 명은 조선에서 요청한 종계변무의 사연을 명 실록에 싣고, 새로 편찬하는 대명회전에도 개정한 내용을 싣겠다는 답을 보냈다. 마침내 1588년(선조 21) 5월 2일에 사은사 유홍, 서장관 윤섬이 대명회전 가운데 조선 부분을 가지고 왔는데 이성계의 종계가 완전하게 개정되어 있었다. 1589년 11월에 선조는 그 동안 사절로 명나라에 다녀오거나 또는 주문奏文을 지은이로서 공로가 뚜렷한 사람들을 공신에 책봉하라 명령하였다. 1589년 11월 22일에 공이 있는 19명을 선정하고 이들을 다시 세 등급으로 구분하여 논공한 뒤 책봉이 확정되었다. 이어서 1590년 8월 1일에 녹권錄卷을 반사하고 고유제告由祭와 회맹會盟을 의례대로 한 뒤 물품을 등급별로 하사하고 나라에 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 백관이 진하進賀하니 궐정闕庭에서 사연賜宴하였다.
일등은 3명으로, 1584년 종계변무 주청사奏請使로 명에 가서 개정, 간행된 대명회전을 확인하고 돌아온 황정욱黃廷彧에게 장계부원군長溪府院君을, 1587년 주청사로 명에 가서 고쳐진 대명회전 가운데 조선에 관계된 한 본本을 받아온 유홍兪泓에게 기계부원군杞溪府院君을, 1589년 성절사聖節使로 명에 가서 개정된 대명회전 전질을 가지고 돌아온 윤근수尹根壽에게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을 봉하고 수충공성익모수기광국공신輸忠貢誠翼謨修紀光國功臣이라 하였다.
2등은 7명으로, 1573년 주청사로 명에 다녀온 이후백李後白에게 연양군延陽君을 추봉하고, 1575년 사은사로 명에 가서 종계변무를 주청한 홍성민洪聖民에게 익성군益城君을, 1577년 사은사로 명에 다녀온 윤두수尹斗壽에게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을, 1584년 종계변무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온 한응인韓應寅에게 청평부원군淸平府院君을, 1584년 변무사의 역관譯官으로 명에 다녀온 홍순언洪純彦에게 당릉부원군唐陵府院君을, 158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다녀온 윤섬尹暹에게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을, 1589년 성절사로서 종계변무를 주청한 윤형尹泂에게 무릉부원군茂陵府院君을 봉하고 수충공성익모광국공신輸忠貢誠翼謨光國功臣이라 하였다.
3등은 9명으로, 생전에 종계변무의 주문을 지은 기대승奇大升에게 덕원군德原君을, 1563년(명종 18) 종계변무사로 명나라에 가서 그곳 객사에서 죽은 김주金澍에게 화산군花山君을 각각 추봉하였고 이양원李陽元에게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을, 황림黃琳에게 의성군義城君을, 윤탁연尹卓然에게 칠계군漆溪君을, 정철鄭澈에게 인성부원군寅城府院君을, 이산해李山海에게 아성부원군鵝城府院君을, 유성룡柳成龍에게 풍원부원군豐原府院君을, 최황崔滉에게 해성군海城君을 각각 봉하고, 수충익모광국공신輸忠翼謀光國功臣이라 하였다.
고봉 할아버지가 1572년 돌아가시고 17년뒤인 1590년에 광국공신으로 덕원군에 봉해지면서 아버지 기진奇進 할아버지는 덕성군에 봉해지고 할아버지 기찬奇襸 할아버지나 증조부 기축 할아버지는 판윤공 기대항 할아버지가 한성판윤이 되면서 추증된 품계보다 더 높지 않아서 추가 추증은 없었다. 형제인 형 기대림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로 추증되고 동생 기대절 할아버지, 아들 기효증, 기효민, 기효맹, 조카 기효분, 기효전 할아버지는 모두 광국공신으로 녹훈을 받았다.
선조는 1573년(선조 6)에 종계변무를 위한 주청사奏請使를 보냈다. 당시 주청사는 이후백과 윤근수였으며 서장관은 윤탁연이었다. 명은 조선에서 요청한 종계변무의 사연을 명 실록에 싣고, 새로 편찬하는 대명회전에도 개정한 내용을 싣겠다는 답을 보냈다. 마침내 1588년(선조 21) 5월 2일에 사은사 유홍, 서장관 윤섬이 대명회전 가운데 조선 부분을 가지고 왔는데 이성계의 종계가 완전하게 개정되어 있었다. 1589년 11월에 선조는 그 동안 사절로 명나라에 다녀오거나 또는 주문奏文을 지은이로서 공로가 뚜렷한 사람들을 공신에 책봉하라 명령하였다. 1589년 11월 22일에 공이 있는 19명을 선정하고 이들을 다시 세 등급으로 구분하여 논공한 뒤 책봉이 확정되었다. 이어서 1590년 8월 1일에 녹권錄卷을 반사하고 고유제告由祭와 회맹會盟을 의례대로 한 뒤 물품을 등급별로 하사하고 나라에 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 백관이 진하進賀하니 궐정闕庭에서 사연賜宴하였다.
일등은 3명으로, 1584년 종계변무 주청사奏請使로 명에 가서 개정, 간행된 대명회전을 확인하고 돌아온 황정욱黃廷彧에게 장계부원군長溪府院君을, 1587년 주청사로 명에 가서 고쳐진 대명회전 가운데 조선에 관계된 한 본本을 받아온 유홍兪泓에게 기계부원군杞溪府院君을, 1589년 성절사聖節使로 명에 가서 개정된 대명회전 전질을 가지고 돌아온 윤근수尹根壽에게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을 봉하고 수충공성익모수기광국공신輸忠貢誠翼謨修紀光國功臣이라 하였다.
2등은 7명으로, 1573년 주청사로 명에 다녀온 이후백李後白에게 연양군延陽君을 추봉하고, 1575년 사은사로 명에 가서 종계변무를 주청한 홍성민洪聖民에게 익성군益城君을, 1577년 사은사로 명에 다녀온 윤두수尹斗壽에게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을, 1584년 종계변무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온 한응인韓應寅에게 청평부원군淸平府院君을, 1584년 변무사의 역관譯官으로 명에 다녀온 홍순언洪純彦에게 당릉부원군唐陵府院君을, 158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다녀온 윤섬尹暹에게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을, 1589년 성절사로서 종계변무를 주청한 윤형尹泂에게 무릉부원군茂陵府院君을 봉하고 수충공성익모광국공신輸忠貢誠翼謨光國功臣이라 하였다.
3등은 9명으로, 생전에 종계변무의 주문을 지은 기대승奇大升에게 덕원군德原君을, 1563년(명종 18) 종계변무사로 명나라에 가서 그곳 객사에서 죽은 김주金澍에게 화산군花山君을 각각 추봉하였고 이양원李陽元에게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을, 황림黃琳에게 의성군義城君을, 윤탁연尹卓然에게 칠계군漆溪君을, 정철鄭澈에게 인성부원군寅城府院君을, 이산해李山海에게 아성부원군鵝城府院君을, 유성룡柳成龍에게 풍원부원군豐原府院君을, 최황崔滉에게 해성군海城君을 각각 봉하고, 수충익모광국공신輸忠翼謀光國功臣이라 하였다.
고봉 할아버지가 1572년 돌아가시고 17년뒤인 1590년에 광국공신으로 덕원군에 봉해지면서 아버지 기진奇進 할아버지는 덕성군에 봉해지고 할아버지 기찬奇襸 할아버지나 증조부 기축 할아버지는 판윤공 기대항 할아버지가 한성판윤이 되면서 추증된 품계보다 더 높지 않아서 추가 추증은 없었다. 형제인 형 기대림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로 추증되고 동생 기대절 할아버지, 아들 기효증, 기효민, 기효맹, 조카 기효분, 기효전 할아버지는 모두 광국공신으로 녹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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