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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기씨역사

고려시대 중기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기씨와 1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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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1회 작성일 25-11-1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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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족원류1씨족원류2씨족원류3기탁성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기씨의 중흥은 기탁성奇卓成부터이다. 기탁성은 무관으로 폴로경기인 격구를 잘하여 의종의 눈에 들고 경호부대인 견룡에 근무하여 경호부대장인 위장군衛將軍까지 되었다. 이어서 정중부의 무신란에 가담하여 권력자가 되었다. 이때 무신정권에 반대하여 평양에서 일어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는 진압군의 부원수로 참전하고 돌아왔다. 이때 19세의 최충헌을 별초도령으로 발탁하여 최충헌 출세의 길을 열어준다. 우리기씨의 중흥과 연관이 있는 기탁성, 최충헌, 기홍수의 졸기(죽은 기록)를 고려사에서 인용한다.

[기탁성奇卓誠은 행주幸州 사람이다. 용모와 태도가 아름다웠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했다. 처음 교위校尉에 보임補任되었는데, 의종毅宗이 말타기와 격구擊毬를 좋아해서 그를 견룡군牽龍軍으로 발탁하여 늘 곁에 있게 했다. 권력을 가진 귀족(權貴)들을 잘 사귀더니 위장군衛將軍으로 승진하였고, 명종明宗 초에는 여러 번 승진하여 참지정사叅知政事가 되었다. 조위총趙位寵이 반란을 일으키자, 기탁성은 부원수副元帥가 되어 이를 참전하였고, 돌아와서는 판병부사判兵部事로 있다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판이부사判吏部事로 승진하였다. 김평金平이란 사람이 있어 어려서부터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김보당金甫當의 난에 장인 한언국韓彦國이 피살되자 김평은 처자妻子를 데리고 승평군昇平郡에 숨어 살았다. 기탁성이 정권을 잡자 김평이 재능이 있다 하여 직사관直史館으로 발탁하였다. 기탁성은 재물 욕심이 많아 벼슬을 판 까닭에, 어진 이들이 자취를 감추고 남을 모함하고 아첨하는 자들이 다투어 진출하였다. 가신家臣 고충전高忠全과 이인령李仁齡은 모두 교활한 데다 탐욕스럽고 야비하여 그 악명이 멀리까지 퍼졌다. 기탁성은 명종 9년(1179)에 죽었다. 광평궁廣平宮이 오랫동안 버려져 주인이 없자 기탁성은 왕에게 요청하여 그 궁에 살고자 하였다. 그의 처가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고 몇 달 동안 광평궁에서 살다가 죽었다. 뒤에 왕이 조위총의 반란을 토벌한 공을 인정하여 추충협모좌리동덕공신推忠協謀佐理同德功臣 수태사守太師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추증追贈하고 공신각에 초상을 그려 안치하였다. (奇卓誠, 幸州人. 美容儀, 善射御. 初補校尉, 毅宗好馳馬擊毬, 擢爲牽龍, 常在王側. 善事權貴, 驟遷衛將軍, 明宗初, 累轉叅知政事. 趙位寵起兵, 卓誠爲副元帥禦之, 及還, 判兵部事, 進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 有金平者, 少有文名, 金甫當之亂, 妻父韓彦國被戮, 平携妻子, 隱於昇平郡. 及卓誠秉政, 以平有才, 擢爲直史舘. 卓誠貪財賣官, 由是, 賢者屛跡, 讒佞競進. 家臣高忠全·李仁齡, 皆姦黠貪鄙, 惡聲遠播. 九年卒. 廣平宮久廢無主, 卓誠欲請王居之. 其妻諫止之, 不聽居數月而死. 後王論討位寵功, 贈推忠協謀佐理同德功臣守太師·門下侍中, 圖形閣上.)]

최충헌은 기씨는 아니지만 그의 묘지명에서 우리 기씨와 관련된 중요한 내용만 따온다.
[부인夫人 송씨宋氏는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송청宋淸의 딸이다. 부녀자로서의 규범[柔範]에 원칙이 있었고, 부인으로서의 도[婦道]에 어긋남이 없었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으며, 공보다 앞서 죽었다. (夫人宋氏, 知樞密院事尙書左僕射上將軍致仕宋淸之女也. 柔範有則, 婦道無違. 生二子一女)]

기탁성이 의종 때에 무관이 되고 정중부의 무신난 이후에 권신이 되면서 기탁성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역사책이나 족보에 보이지 않던 기씨들이 역사책에 나오기 시작하는데 1178년에 장군 기세준奇世俊을 금나라에 사신으로 보냈고 1179년엔 중랑장 기세정奇世貞이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죽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족보에서 1세조 기순우奇純祐 할아버지는 高麗 仁宗時人 官門下平章事라 하지만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등 다른 역사책에 기탁성이 나타나기 이전에 의종의 아버지인 인종 때에 기씨가 이렇게 높은 벼슬하신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선세업적에는 이곡이 지은 영안왕 기자오의 행장 기록에서 가져왔다고 하지만 영안왕 행장을 읽어보아도 영안왕의 최대 선조는 영안왕의 고조부이자 우리에겐 2세조이신 기수전奇守全 할아버지까지는 高祖門下侍郞平章事諱守全으로는 나와도 기순우 할아버지는 기록에 없다. 그러나 17세기에 나온 조종운이 지은 씨족원류 책의 행주기씨 부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는데 이책에서 시조 기순우 할아버지를 文林郞追封門下平章事太子太傅로 기록되어 있다. 위 내용들로 정리 하자면 기탁성이 정중부의 무신정권에 반대하여 평양에서 일으킨 1174년 조위총의 반란을 평정하러 부원수로 갈 때 19세의 최충헌을 별초도령으로 발탁하여 출정한 기록으로 보아 기탁성이 정3품의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라 지금의 3성 장군쯤 되고 최충헌은 별초도령이라 중위, 소위의 소대장 정도로 보면 나이는 20여년 차이가 날테고 크게 보면 부모와 자식뻘로 보인다. 이 최충헌의 첫 번째 부인이 송청의 딸이며 2세조 기수전 할아버지도 부인이 송청의 딸이다. 그러니까 둘은 동서간이 된다. 1세조 기순우 할아버지가 벼슬이 말단의 종9품 문관인 문림랑文林郞 이었는데 기탁성이 권신이 되어 여러 기씨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고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동서인 2세조 기수전 할아버지가 정2품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면서 1세조 기순우 할아버지도 정2품의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추증이 된 것으로 보인다.

최충헌의 집권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기홍수奇洪壽이다. 족보엔 3세 기윤숙奇允肅의 큰아들로 나오지만 잘못된 것으로 역사기록에는 최충헌과 함께 여러 국정을 논의한 기홍수를 최충헌의 처조카의 아들로 족보에 기록한 것은 기윤숙의 아들들 돌림자가 홍洪이라서 같은 세대로 착각하여 족보를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를 인용하면 기홍수는 어려서는 글씨를 잘 쓰고 글을 잘지였으나, 장년이 되어서 무인이 되었다. 1194년(명종 24) 12월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1197년 9월에 참지정사參知政事 판병부사判兵部事, 11월엔 수사도守司徒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감수국사監修國史 판병부사判兵部事 태자태부太子太傅가 되었다. 1199년(신종 2) 5월에 명필이라서 신종의 명령으로 대관전무일편大觀殿無逸篇을 고쳐 썼으며, 12월에 수태위守太尉 문하시랑門下侍郎 평장사平章事, 1200년 12월에 수태사주국守太師柱國, 1201년 12월에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를 거쳐 1203년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 판이부사判吏部事로 물러났다. 1204년 1월에 최충헌崔忠獻 등과 더불어 신종으로부터 희종에게의 왕위를 물려주는 논의를 하였고, 희종 때 이부吏部에서 전선銓選(인사행정)을 맡았으나, 최충헌에게 사양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음악과 글씨를 즐겼다. 시호는 경의景懿이다. 부인은 기록이 없지만 인터넷에는 몰몬교에서 운영하는 족보에 기홍수의 부인이 박씨라고 나온다. 그러나 더 검색은 되지 않고 있다. 기씨로서 기홍수가 높은 벼슬을 지낸 것도 중요하겠지만 기홍수가 물러나 음악과 글씨로 여생을 보낸 집터가 행주산성 안의 우리 행주기씨유허비가 있는 자리이다. 기가우물 즉 기감천은 기홍수 집의 샘터이고 기가바위 즉 기가암은 정원의 바위이다.

기탁성과 기홍수가 기씨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들인데 아쉽게도 두분 다 조상과 자녀에 대한 기록이 없다. 기탁성은 1세조 기순우 할아버지와 같은 세대 기홍수는 2세조 기수전 할아버지와 같은 세대로 보여서 그 많은 고려시대 유명인사들의 묘지명은 많이 나오는데 이 두분의 묘지명은 없나 아쉬운 마음이다. 묘지명엔 대게는 위로는 증조부까지 아래로는 후손도 기록이 있으니까 이 시대 누군가의 묘지명을 찾으면 혹시나 기순우 할아버지나 기수전 할아버지와 연결되는 형제 4촌 혹은 6촌의 관계를 찾을 수 있거나 기순우 할아버지 이전의 할아버지들을 찾을 수도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있다. 한쪽으로는 묘지명은 묘가 도굴꾼들에게나 지역개발로 이름모를 옛무덤이 파해쳐저서 찾아질 텐데 그런 험한 일은 안 당했음을 다행이라는 마음도 든다. 아니면 두분 다 자손이 없어서 묘지명을 준비한 후손이 없나 그런 마음도 든다. 하여간 기순우 기탁성 기수전 기홍수 모두 묘도 모르고 묘지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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